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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08년8월2일시민선원토요참선큰스님법문
작성자 정광산 작성일 2008-08-12 조회수 5654/2
2008년 8월 2일 시민선원 토요참선 큰스님법문

지게에 태워 금강산 유람을 가다

마음 앞에는 안 되는 것이 없다. 능행스님(경남 거제출신)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양동리에 관자재병원을 건립하여 갈 곳 없는 불쌍한 시신을 거두기로 원을 세우심. 지금 현재 잘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집터를 닦지 않으면 집을 지을 수 없듯이 좋은 과보를 받기위해서는 좋은 과보를 닦아야 한다.

사람은 죽음이 쉬울 해야 한다. 사람은 자기 똥을 자기가 해결해야 되는데. 상락정에는 자기 성깔을 내놓으며, 별의 별 작자가 다 있다. 직원들에게 불평이나 하고. 우리라고 그렇게 안 되리라는 법은 없다. 터를 닦아야 한다. 수행에 열중해야한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오늘도 반갑다. 고맙다.'고 늘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특히 새벽달을 볼 수 있는 것이 고맙다. 아침마다 하는 보건운동이 하기 싫을 때도 있지만, 건강한 몸을 위해 운동을 한다. 건강한 몸에 대해 늘 고맙게 생각해야한다.


아흔을 넘긴 아버지를 지게에 태워 금강산 유람을 다녀온 지게효자. 혼자서 오르기도 힘들다는 금강산과 덕유산, 그리고 중국 타이 산을 아버지를 지게에 태워 관광을 다녀온 인천의 이군익(42. 인천시 남구 용현동)씨.

아버지 이선주(92)씨가 어느 해 봄 독립기념관 나들이 길에 언뜻 금강산 얘기를 꺼내셨다. 한 해 전 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내신 아버지가 적적해하실까 싶어 한창 산으로 들로 모시고 다니던 때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뒤 아버님에게 위안이 될까 싶어 우리 집으로 모시게 된 것입니다. 집으로 모신 뒤에도 휴일만 되면 가까운 곳에 나가 바람을 쏘여 드렸습니다. 그러다가 형님과 상의한 끝에 우리나라 대표적 관광코스인 금강산을 생각해 냈습니다. 7남매의 막내인 저까지 대학 공부를 시키시느라 평생 허리 한번 못 피신 아버지십니다. 듣자마자 마음속으로 '예 아버지. 금강산 아니라 그 할아버지라도 모시고 가겠습니다.' 다짐했지요.

아버님 생신에 즈음해 금강산 여행을 보내드리자고 형제들과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가 산에 오르시는 건 불가능한 일, 산길이니 휠체어도 무용지물일 터였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가볍고 강한 알루미늄 지게. 그때부터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지게를 만들기 위해 설계도를 그리고, 지게를 만들어 줄 기술자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모두들 '못 만든다'며 손사래를 치거나 터무니없는 공임을 요구했다.

집과 직장이 있는 인천을 비롯해 서울 곳곳을 뒤져가며 한 달여 동안 임자를 찾아다녔지만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지게'를 만들어주겠다는 기술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수일을 헤맨 끝에 지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등산용 지게에 특수용접을 해 금강산 유람을 위한 '아버지 전용 지게'가 탄생했다.

지게와 그 위에 앉으신 아버지 덕분에 여행 내내 이씨 일행은 단연 스타였다. 초여름 날씨에 혼자 걷기도 험한 산길을 아버지와 한 몸이 되어 오르는 이씨를 보며, 연배 높은 관광객들은 이씨 일행을 만날 때마다 다가와 어깨를 두드려주며 격려했다. 젊은이들은 차마 다가오지 못하고 이씨가 아버지를 업고 한 발 한 발 떼는 모습에 시선을 모았다. 함께 금강산에 오른 큰 누나 이춘익(62)씨와 형 이관익(55)씨도 흐르는 땀을 닦아주며 막내동생의 효행에 힘을 보탰다.

그렇게 아버지를 업고 천선대로 귀면암으로, 구룡폭포로, 금강산 유람코스를 따라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들에게 짐이 될까 한사코 업히기를 거부하시던 아버지도 "저기 가면 뭐가 있다냐?, "아고, 저게 그림이여 경치여." 질문에 감탄사를 연발하시며 어느덧 금강산 구경에 흠뻑 취하셨다.

지게 무게는 줄잡아 15kg 이상. 아버지가 올라앉으시면 60kg이 넘는다. 이씨는 "산행이 이어지면서 무게를 이기지 못한 어깨와 팔이 뻗뻗하게 굳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어린애 모양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금강산 온천에 갔더니 동행한 우리 형님이 깜짝 놀라시는 겁니다. 지게 지는 동안 실핏줄이 터졌는지 상반신 전체가 거의 피멍이더라구요. 형님이 울컥하시는데, 제가 웃자고 했습니다. 아흔이 넘으신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금강산 구경을 마음껏 하셨는데, 얼마나 좋냐구요."

이씨 집 마당 한쪽의 작은 정자에서 가슴 따뜻한 금강산 유람기를 듣는 동안 말귀 어두운 그의 노부는 묵직한 감동이 담긴 아들의 얘길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사이사이 불혹을 넘긴 아들을 두고 "우리 막내가 일곱 놈 중에 제일 이뻐. 제일 귀엽고, 아버지라면 아주...... 충남 서산서 평생 농사만 지어먹은 내가 아, 남한 땅 안 밟아본 디가 없고 금강산까지 구경했으니 갈 데도 없는 겨 인제." 라며 효심 깊은 아들 자랑에 입이 말랐다.

이 모습을 이씨의 아내 이연희(39)씨도 시종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시아버지를 어릴 적 여읜 친정아버지로 여기고, 시어머니 임종 전까지 성심으로 병수발을 했다던 이씨의 착한 아내다. 뒤에선 여덟 살 손녀 수연이가 "할아버지! 그만하고 인제 같이 놀아요!"를 외치며 바짓자락을 잡아끌었다.

아흔이 넘은 아버지와 함께 사는 늦둥이 막내는 한 번도 아버지를 모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아버님의 보살핌 아래 사는 것으로 여긴다. 그 그늘은 여전히 크다. 보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막내는 아버지를 지게에 태워 금강산과 덕유산을 유람했다.

바다 건너 중국 타이 산에도 올랐다. 효를 으뜸으로 치는 유학의 본고장 중국에 '한국의 효의 진수'를 보여준 것이다. '지게효자' 이군익씨의 소식이 중국에 까지 전해진 것이다. 중국 현지 매스컴은 "효가 사라진 중국에 경종을 울리는 일"이라면서 온통 난리였다.

인천시로부터 '2006 자랑스러운 인천시민'을 수상했고, 지신이 근무하는 농협중앙회 인천지역본부에서도 표창을 받은 이씨는 중국 취푸시인협회 부회장으로부터는 7언시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그 7언시 마지막 구절
'中國韓國同此心
중국과 한국 두 나라에 효심은 거의 같구나'
효가 만국 공통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중앙일보, 동아일보 기사 참조)

앞으로 중국의 효자와 한국의 효자 시리즈를 좋은 만남에 연재할 계획이다.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으면, 재산이 탕진되니 할 짓이 아니다. 복을 못 지을수록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큰스님의 마을 상좌 중 한 분은 평소에 아끼던 돈을 보시하고, 재산을 다 내주고 열흘 만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없는 집안일수록 재산을 다 날리고, 49재 붙일 돈도 없다. 장수 시대가 간단한 것이 아니다. 죽음 앞에 간단해야지, 현재 죽음 앞에 가뿐해야 한다. 과거에 화려했던 것은 의미가 없다. 죽음은 5분 안에. 가뿐한 죽음. 조사 죽음. 조사 열반은 수의왕생. 임종 때 시 한 수 지어놓고, 죽음. 몸은 다했지만 생명력은 여전하다. 열반이다. 임종 시 내용도 중요하다. '주여 저를 버렸나이까?'는 나약한 표현이다. 한이다. 한을 남기는 것은 졸장부이다. 해가 동쪽에서 떴다가 서쪽에서 지는구나. 불가에서는 죽을 때 보자라는 말이 있다. 업이 다음 생까지 넘어간다.

옛날에는 결혼 당사자가 상대가 누구 인지도 모르고 부모들끼리 선을 보고 자녀 결혼을 시킨 경우도 있었다. 한 보살이 그런 경우이다. 시집을 가니 남편이란 작자가 술독을 옆에 차고 다님. 남편이 어렸을 적에 울었을 때, 시부모들이 농주를 주면 울음을 그쳤다고 한다. 술 중독이 되어 술통을 차고 다녔다. 이 보살은 세월과 설움을 친정에 알리지도 안하고, 조용히 혼자 새기고, 새기고 새기면서 품삯 바느질을 하면서 보낸다. 이러는 중에 관세음보살에 의지하여 한을 관세음보살에 묻어간다. 품삯 바느질로 아이들도 잘 키우고 관세음보살을 지극정성으로 모심. 돌아가시기 전에 큰스님께 상당한 돈을 조건 없이 기부하심. 돌아가실 때도 며느리 무릎에서 숨을 거두셨다고 한다. 경을 많이 외우면 쉽게 간다.

큰스님께서 포항 원효암에 수도를 하고 계실 때, 영주암의 이전 주지이신 도외스님이 포항 원효암을 삼고초려 했다. 그 당시는 부산-포항까지 7시간 이상 걸렸다. 도외스님의 뜻이 지극하여 큰스님께서 승낙을 하고 영주암에 와보니 정초기도에 신도 15명 달랑이었고, 법당만 있었다. 큰스님께서 주변을 땅을 사 넣고, 현재의 가람으로 가꾸셨다고 하셨다. 전화, 전기도 없었다. 인연관계를 지어야 한다.

포항 신도의 경우 부부싸움을 하도 많이 하여, 천수경을 외우게 하셨단다. 경을 외운 뒤로 부부싸움이 없어지고, 화목해짐. 서로 측은히 여기게 되었다 한다. 경을 많이 외우고 공덕을 지으면, 나쁜 성깔 고치고, 죽음이 좋아진다.

효는 불가사의의 공덕이다. 중국의 맹종은 대표적 효자이다. 아버지가 병이 나서, 겨울 대밭에 죽순을 구하여 달여 먹이면 아버지 병이 낫는다고 하였다. 대밭에 기도하니 죽순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치에도 안 맞지만 이러한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효를 숭상하고, 죽음에 대해 터를 닦아야 한다.



佛紀 2552년 8월 좋은날

金井山人 佛國 正觀 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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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옥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2012-10-01 16:4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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