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전 11시 부산 망미동 산꼭대기에 있는 영주암을 갔더니, 조실 정관스님은 가사장삼을 수하고 사시예불을 올리고 있었다. 스님이 수행하는 공간은 올해 새로 지은 전각인데 현판에 새겨진 이름이 '본래지당(本來知堂)'이다. 어려운 뜻은 아닌 것 같았다. 스님은 기자의 삼배를 기꺼이 받아주고 질문을 해야 할 기자에게 되레 물었다. "본래지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본래부터 있는 마음자리, 부처의 종자가 아닌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본래지는 기자양반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거창한 뜻은 아닙니다.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잘 들어보세요." 스님은 단 한 명의 청자(聽者)를 앞에 두고 딱 1시간 동안 '법문'을 하시더니 정각 12시가 되어 공양간 쪽에서 목탁이 울리자 공양간으로 가셨다. 스님의 법문을 정리했다.
"本來知 회복 위한 수행이 부처님의 正法" 마음의 靈知가 밝다해도 緣이 닿기 전엔 반응없어 '생각할줄 아는 주인공' 참구해 妙空妙有 증득하길
사진설명: 정관스님은 "마음 건강을 회복하라"고 당부했다. 타종교는 신을 종교로 믿고 모시지만 우리 불교는 마음이 신이기 때문에 마음을 종교로 모시고 신(信)해야 한다고 했다. 마음이 곧 종교의 대상이라는 설명이다.
"마음은 본래부터 있는 법(法)이다. 본래지(本來知)의 마음은 어느때 부터가 아니고 하늘 땅 이전 본래부터 있는 법이다. 인식할 줄 아는 주인은 마음이지 마음밖에 다른 무엇이 인식해 내는 것은 아니다. 차면 차다는 인식, 따스면 따스다는 인식을 지어내는 것은 마음이지 마음밖에 그 무엇도 아니다. 마음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음이 마음의 실체이고 마음의 위신력이다.
휘발유 화력이 제아무리 높고 강하다 해도 성냥의 연(緣)이 닿기 전은 아무 반응이 없다. 없을 때에는 휘발유 화력에 그저 침묵이지 어떤 평가가 없었지만 성냥 연이 닿아서 화력이 높아지니 휘발유에 평가가 다시 시작됨이다. 우리들 마음 영지(靈知)가 밝고 밝다 해도 어떤 연(緣)이 닿기 전에는 휘발유와 같이 아무 반응이 없다. 휘발유는 화력이 없어도 그 위력에 대해서 어떤 평을 할 수 없듯이 우리들 마음 영지도 항상 밝아 있음에 고개숙여 겸손해야 한다.
하늘 땅 이전 본래부터 신령스러운 마음이 신(神)이지 마음밖에 어떤 신도 인정할 수 없음이 부처님의 정법이다. 자기의 신을 자기가 지극정성으로 섬겨야 하는 이유다. 웃을 때 웃을 줄 알고 슬플 때 슬플 줄 아는 마음은 하늘 땅 이전 본래부터이지 어느 때 부터가 아니라고 함이 불교의 정법이다. 차고 따스함을 스스로 아는 감(感)이 부처님 입이다 해서 다르고 임금의 입이다 해서 다르고 거지들의 입이다 해서 다르고 귀인들의 입이다 해서 다르고 축생 미물의 입이다 해서 다른 것은 절대로 아니다. 차고 따스함을 스스로 아는 알 지(知)는 우주법계에 세상천지에 하나이지 둘이 아니다.
본래지의 마음은 고금이 없다. 억만년 전 마음 영지나, 억만년 후 마음 영지나 내내 같음이지 다름이 아니다. 만고의 불변 다르지 않고, 다르지 않으니 신비이고 알수없는 묘법이고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甚微妙法)이다. 지극한 신심이 아니고는 본래지의 마음을 잡을 수 없고 접근할 수 없다.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본래지의 마음을 섬기고 회복하기 위해 수행함이 부처님의 정법이고 최상승법이다. 자기들이 본래지의 마음을 믿지 않고 자기가 섬기지 않고 참구하지 않음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책임을 포기하는 극히 어리석은 행위이다. 본래지는 우리들의 천국이고 중생들의 안식처다.
본래지는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세세생생 나와 함께 하는 것이 본래지다. 윤회고(輪回苦)를 또 하고 또 하는 업보를 받는다 해도 본래지는 나를 버리지 않고 나와 영원히 함께 한다. 인식 이전 본래지, 연기 이전 무아처를 참구하고 예경하고 섬기고 기도하고 불공하고 신행함이 중생들이 가야할 길이고 중생들이 가야할 대도무문(大道無門)이다.
지혜자가 되어 지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인식이전 본래 청정한 본래지, 인식이전 무아의 법, 무아의 실체를 증득.증오(證悟)해야 한다. 중생 모두가 자기들의 본래지 자기들의 무아법 무아의 위신력이 구족해 있지만 공부하지 않고 증득하지 않기 때문에 신심이 굳게 서지 않는 것이다. 본래의 공덕을 외면하고 스스로 타락의 길로 가는 있는 형상이다.
따라서 가장 복된 시간, 가장 건강한 시간, 가장 안정된 시간, 세세생생토록 자기와 함께 자기와 같이할 시간은 '생각할 줄 아는 주인공(本來知)'을 참구하는 시간이다. '생각할 줄 아 는 주인공이 무엇인가…' 생각할 줄 아는 주인공을 참구하는 것이 불교의 정법이고 구경(究竟)이다. 생각할 줄 아는 주인공 참구의 결과를 말로 표현한다면 공이고 무아이다. 공에는 생로병사와 탐진치, 희로애락, 극락과 지옥, 부처와 중생, '너니 나니'하는 일체 시시비비가 다 끊어진 본래없는 법이다.
그러나 마음은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영영 없다고만 하면 허무에 떨어지는 병이고 있다고만 하면 상에 집착하는 병이니, 상도 아니고 허무도 아닌,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묘공묘유(妙空妙有)'이다. 묘공묘유를 바로 알고 바로 증득함으로써 독거락자(獨居樂者)가 된다.
찰나도 쉬지 않고 우리 육신은 노병으로 변해가고 천덕꾸러기로 변해가고 타락으로 변해가니 장래가 걱정되지 않는가. 겁이 나지 않는가. 두렵지 않는가. 겁도 없이 장래가 걱정도 안되고 두려움도 없으면 영영 제도하지 못한다. 일체 중생 모두가 가야할 길은 공(空), 공이 곧 신이고 마음이니 마음이 곧 종교다."
부산=하정은 기자 tomato77@ibulgyo.com
정관스님은 54년 동산스님 은사로 출가 스승이 지어준 법명은 鏡換 이름 뜻 부담 커 직접 고쳐
1954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범어사 불교전문강원을 수료하고 범어사서 14안거를 성만했다. 이후 쌍계사 범어사 영주암 주지를 지냈다. 1972년 학교법인 금정학원 이사장, 1986년 대한불교어린이지도자연합회장, 1991년 부산 대한불교신문 이사장, 1992년 부산시불교연합회장, 1994년 사단법인 불국토 이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수행과 포교에 앞장섰다. 1992년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으로도 활동했다.
정관스님은 은사 동산스님과의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줬다. 정관스님이 계를 수지받을 당시인 60여년 전 이야기다. "(출가자)누구나 계를 받기 전에는 계를 받고 싶은 마음만 앞서기 마련이지. 우리스님(동산스님)은 내게 '경환(鏡煥)'이란 이름(법명)으로 그토록 고대했던 계를 주셨어. 그런데 이름처럼 '투명하고 빛나는' 수행자로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이 얼마나 크던지 어린 마음에 밤잠을 설치면서 고민을 하게 되었어. 계를 수지하고 갈길을 분명히 정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 심적 부담으로 마음고생을 한 게야. 흔한말로 '중도 아니도 소도 아니다'는 생각에 하루는 우리스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당당하게 주장했지."
"스님, 스님이 붙여주신 '경환'이란 이름은 도무지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큰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해보았는데 정관(正觀)이란 이름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잘나서 바로 본것이 아니라, 앞으로 바로 보려고 노력하며 수행하고자 하는 뜻입니다." 이 말을 들은 동산스님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아무말없이 몇분간 정관스님의 눈동자를 맞추면서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그렇게 하라"고만 했다고 한다.
그 뒤로 정관스님에겐 곤욕 아닌 곤욕이 뒤따랐다. 동산스님은 정관스님이 공부하고 울력하고 심지어 차 한잔을 우릴때조차 "그것이 정관이냐? 그것이 바로 본 결과냐?"하며 시도때도 없이 놀려대는 통에 정관스님은 낯 붉어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은사스님은 도반스님이 가끔 찾아올 때도 그분들 앞에서 '그것이 정관이냐? 저것이 정관이냐?'하시며 저를 당혹스럽게 만드셨지요. 지금 생각하니 그 시절이 참 좋았고, 유머러스하셨던 우리스님도 참으로 그립습니다."
정관스님은 그로부터 수십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바로보기 위해 쉼없이 정진'하며 이름처럼 살아왔다. 스님의 '천진'한 미소는 스님의 세납을 도저히 짐작키 어렵게 만든다. 예의에 벗어난 질문이지만 세납을 묻자, "부증불감(不增不減)"이라고 짧게 답했다.